구미에 효자봉이라고 마을 뒷산이 하나 있습니다.
산이라곤 발도 들여놓기 싫어하던 시절에 그 효자봉을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.
마을에서 효자봉을 올라가다보면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, 거기 쉼터로 꾸며놓은 정자가 하나 있어서 내 멋대로 정자봉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.
집에서 정자봉까지는 1.5km 남짓, 산을 썩 잘타는 사람이 아니라도 20-30분이면 너끈히 오르는 봉우리입니다
올라가는 길에 크게 힘든 곳은 없습니다.
효자봉 높이가 해발 400쯤 되고, 정자봉은 그보다 훨씬 낮아요.
가볍게 산책삼아 오를 수 있는 산이죠.
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어 맨땅이 미끄럽다면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됩니다.
중간 중간 쉼터를 만들어 놓아서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되고요.
중턱에는 운동 할 수 있는 기구들이 있습니다. 중턱이라고 하지만 10분 쯤 오르면 됩니다.
올라가는 길이 힘들지는 않아요. 뭐 편안하게 풀 냄새 맡아가며 콧노래 부르면 갈 수 있는 산이니까요.
정자봉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구미 시민운동장을 비롯한 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.
사진으로 봐도 그다지 높은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.
그런데...
산에 발도 들여놓기 싫어하던 때라서
우린 이 작은 봉우리를 올라오면서 '에베레스트' 등반하듯 준비를 하고 왔지요.
배낭 두 개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온 겁니다.
그것도 아주 큰 배낭 두 개에...
남들 15분이면 올라가는 정자봉 길을... 우린 3시간 만에 올라 왔습니다.
둘 다 얼굴 새빨개가지고......
이 힘든 등반(?)을 했으니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.
김밥 두 통,, 삶은 달걀 여섯 개....
이게 동네 야산에 올라가서 먹을 양인가요. 우린 그랬습니다. 뭐 이것도 좀 모자란다 싶었으니까요.
안 보이는 곳에 오이와 과일도 있답니다.
실컷 배불리 먹고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눕니다.
어디서 왔냐고 물어요.
"저 아래서요..."
꽤나 힘들게 왔다는 표정으로 산 아래를 가리켰지만 그땐 몰랐어요. 15분 만에 올라 올 수 있는 곳이란 걸..
작은 물통 하나 달랑 들고 가는 아저씨를 보면서 우리는 한동안 놀라운 탄성을 내 뱉었습니다. --;;;
그만큰 쉽고 가볍게 올라오는 길을 우린 두어 끼니 먹을꺼리를 들고 왔답니다.
정작 중요한 건, 효자봉은 이 정자봉에서 또 한참을 가야 하는데, 우린 거기가 효자봉인줄 알고 밥만 실컷 먹고 내려 왔다는 겁니다.
산에 가서 배가 불러 내려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습니다. --
벌써 몇 해가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도 이 사진을 되돌려보면 어처구니없어 웃음만 나옵니다.
ㅎㅎ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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